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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부] 비가 오는 거리에서 잠 든다

[최한솔 X 부승관]

비가 오는 거리에서 잠 든다

 

 

 

 

여름의 더위가 거세질 무렵 찾아오는 장마가 좋았다. 비 오는 날이 죽을 만큼 싫으면서도, 또 간절하게 비를 기다리곤 했다. 토독, 창문을 두드려오는 빗소리를 듣자마자 얇은 가디건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이번 주부터 장마라던 기상 예보가 들어맞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익숙하게 집 앞의 공원으로 향한 승관은 평소엔 어르신들이 앉아계시던 정자로 가 자리를 잡았다. 급한 마음에 빨리 걸었더니 앞머리가 흐트러져 벌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빗물이 들어왔다. 승관은 아무렇게나 빗물을 털어낸 다음 머리카락을 조금 털어 모양새를 정리했다. 잘 보여야지.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공원에 도착한 지 30분쯤이 지났을까. 비는 점점 거세져 공원 놀이터의 흙을 흠뻑 적셨다. 색이 진해진 흙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승관은 머리를 휘저으며 잡념에 빠지지 않으려 애썼다.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 있다가 녀석을 반기지 못할 것 같아 두려운 마음 탓이었다.

 

코끝을 스치는 비의 비린내와 질척이는 신발은 싫었지만, 그래도 비가 좋았다. 끔찍하게 비를 싫어하는 승관은, 그래도 비가 오래토록 오는 장마를 좋아했다. 비를 싫어하게 된 이유이자, 비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된 유일한 이유는,

 



"안녕."

"이번엔 일찍 왔네."

 



비가 올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녀석 때문이었다. 승관의 얼굴에 자연스레 웃음이 스몄다. 웃을 일이라곤 없어 무표정으로 하루 종일을 일관했던 승관이 오늘 처음으로 지어보는 표정이었다. 언제 죽을상으로 지냈냐는 듯 밝게 웃어 보이는 승관의 앞에 마주선 소년의 입 꼬리도 함께 올라갔다.


 


"우산 쓰고 오지."

"어차피 비 안 맞는 거 알잖아."


 


그러네. 집에서 공원까지 오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바람에 날려 오는 빗방울에 머리가 젖은 자신과 달리 녀석은 보송보송하다. 그 모습에 새삼스럽게 가슴 언저리가 욱신거렸다. 제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 녀석을 가만가만 바라보면, 눈앞의 잘생긴 얼굴은 그간 못 본 걸 만회하기라도 하려는 듯 밝게 웃어준다.


 


"살이 좀 빠졌나?"

", ."

"밥 좀 잘 먹지."

"못 본 지 너무 오래돼서 안 넘어갔어."

 



요즘 비 너무 안 왔잖아. 승관은 장난 투로 말을 던지곤 녀석의 반응을 살폈다. 예상대로 녀석은 따스한 눈길을 떼지 않은 채 기분 좋게 웃었다. 제 말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쯤은 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한솔아, 최한솔. 그 이름 석 자를 얼마나 되뇌었던가. 들어맞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기상예보에 마음 졸이며, 비가 온다던 기상 캐스터의 말과 다르게 쨍쨍한 햇빛이 얄궂어 얼마나 입술을 질끈 물었는 지 모르겠다. 하얀 잇새 사이로 붉은 핏기가 드리워도 질끈... 물다가 기어코 우는 일도 다반사였다. 목 놓아 울며 감정을 토해내고 나면, 자신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애달픈 마음은 다시금 차올랐다. 결국엔 그것이 못내 버거워 잔뜩 부어오른 눈을 한 채 잠이 들곤 했다. 비가 내리기 전까지 승관의 일상은 그러했다.

 



"좀 걸을까?"

"."



 

제 앞에 서서 정자를 나서는 녀석의 머리에 우산을 씌워주려던 승관은 아차 싶은 마음에 한솔과 거리를 두었다. 실수로라도 한솔과 닿아서는 안 된다. 너무 오랜만의 만남이라 잊고 있었다.

 



"손잡고 싶다."

"그러게……."

"뽀뽀도 하고 싶고."

 



하여간. 능글맞은 표정과 함께 눈썹을 들썩이는 한솔에 승관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만지고 싶고, 닿고 싶다. 누군들 사랑하는 이와 맞닿고 싶지 않을까. 맨 처음 비와 함께 한솔이 찾아왔을 때, 너무 놀라 안아보려다 사라졌던 적이 있었다. 그 다음번엔 손을 잡아보려다가 또 다시 사라져버리고. 녀석을 두 번이나 허망하게 보내고서야 깨달았다. 볼 수 없는 사람을 볼 수 있게 된 대가는 혹독하다는 것을. 햇빛이 쨍한 맑은 날엔 볼 수 없고, 설령 비 오는 날 녀석이 오더라도 닿을 수는 없다.


 


"나 이쪽은 가기 싫은데."

"?"

 



왜냐는 물음과 함께 자신을 바라보는 한솔을 허망하게 마주한다. 그 날 이후로 이쪽은 우연이라도 오지 않으려 부러 빙 돌아가곤 했다. 아무리 말간 날씨여도 그 도로만 생각하면 귓가에 빗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왜냐고 물을 수가 있어.


 


"아직도 있어."

"뭐가."

"하얀 스프레이 자국목격자 찾는 현수막."

"……."

"근데 내가 어떻게 저길 가."

 



매일 외출하는 가족들에게 물었다. 오늘도 있어? 그런 제 물음에 가족들은 안쓰러운 시선과 함께 고개를 주억이고. 그 고개의 주억임에 쓰러지듯 엎어지고 마는 하루, 또 하루. 왜 갈 수 없냐는 한솔의 물음이 꼭 이제 그만 헤어나라는 말 같아 누가 목이라도 조르는 것 마냥 턱하고 숨이 막혔다. 얼마나 됐다고 헤어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왜 넌 비 올 때만 와?"

"……."

"나는, 비가 너무 싫은데."

 



늘 물어보고 싶었던, 수도 없이 입에 맴돌던 질문을 오늘에서야 내뱉었다. 왜 하필이면 이 끔찍한 비 내리는 날에 찾아오는 걸까. 너를 앗아간 비가 너를 데려다 준다. 너무나도 아이러니해서 돌아버릴 것 같아. 승관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한솔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눈. 너는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나는 도망치는 차를 보다가 뒤늦게 너를 끌어안고. 입김 한번에도 흔적을 감추는 민들레꽃처럼 떨리는 네 몸이 무서웠다. 지나가던 사람이 놀라 구급차를 불러주고, 네가 눈을 감으면 다시는 못 뜰 것 같아 온갖 쓸데없는 말은 다 뱉어보고, 그런 내 노력이 무색하게 기어코 네가 눈을 감아버리던 그 순간까지도. 마치 지독한 악몽처럼, 다시는 잊히지 않을 듯 뇌리에 박혀버려선.

 



"너 또 비 맞고 있을까봐

 



너를 화장 시켜주던 날. 그날도 비가 왔다. 너의 가족들과 내가 흘린 눈물의 양과 엇비슷하게, 바닥을 뚫어버릴 것처럼 내리던 비. 빗물이 몸에 닿는 게 역하면서도, 더 나아갈 수가 없어 장례식장 앞에서 오롯이 비를 맞았던 날.

 



비 맞지 마.’

뭐야, .’

감기 걸려.’

 



너를 태우면서 정말 하늘로 올려 보내긴 한 건지, 새하얀 옷을 입고선 내 앞에 나타났다. 막아지지도 않는 빗물을 어떻게든 덜 맞게 해주려고 내 머리 부근에 양손을 갖다 대는 네가 우스웠다. 사실 아주 조금은 네가 살아서 돌아 와준 건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는데. 손등을 통과해 바닥으로 내쳐지는 빗물을 보고서야 현실을 절감했다. 정말로 너는, 더 이상 현실에 없는 사람이구나.

 


"다른 때도 오면 안 돼?"

사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라.”

그렇구나…….”


 


고집스레 길을 돌려 다시금 집 쪽으로 향하다가,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점차 작아짐을 느꼈다. 순간 덜컹하는 마음에 승관은 한솔을 향해있던 시선을 주변 풍경으로 돌렸다. 비가 그쳐가고 있다.

 



뭐야장마라고 했는데.”

소나기야.”

 



이제 금방 그칠 거야. 한솔의 말에 승관은 어이가 없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런 그의 손끝은 눈에 띄게 떨렸다. 잡아주고 싶다. 한솔은 무의식적으로 승관의 손을 잡으려 팔을 뻗었다.


 


안 돼, 잡지 마.”

잡아주고 싶어.”

싫어. 너 그럼 가버리잖아.”

없어지기 전에, 손이라도 잡게 해주라.”

 



어차피 비 그치면 나도 사라져. 한솔의 잔인한 말에 기어코 눈물이 비집고 나온다. 잡아달라며 제게 뻗어온 손을 너무나도 잡고 싶어 눈물이 났다.

 



또 올게, 금방 올게.”

거짓말.”

진짜야. 나 거짓말 안 해.”

 



나 못 믿어? 장난스러운 한솔의 표정에 승관의 울음이 누그러졌다. 결국은 늘 그랬듯 한솔이 이기고 마는 싸움. 승관은 제 앞에 놓인 손을 조심스레 맞잡았다. 그러자 온기를 채 느껴보기도 전에 한솔은 사라졌다. 영화에서처럼 서서히 모습을 감추는 것도 아니고, 언제 있었냐는 듯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한솔이 떠난 빈 자리를 우직스레 지키던 승관은 비가 완전히 그치고서야 집으로 향했다.

 



얼른 와야 해.”

 



비가 오는 날에 잠든 너는, 오늘도 어김없이 내 맘에 내린다.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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