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날 때 조금씩 써둔 조각글들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구분 짓기가 힘드니까 글마다 접어둘게요.
AU 이웃집 황흑 이야기는 나중에 회지로 나올 것 같아서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아마 장편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래에 있는 건 이런 이야기를 쓰고싶다~ 하고 처음에 썼던 글이예요.
“쿠로코 씨 여기서 뭐함까?”
“…집 키를 잃어버렸어요.”
그래서 지금 집에 못 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키세의 말에 쿠로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코를 킁 들이켰다. 며칠 전에 감기 기운이 있다고 얼핏 얘길 들은 것 같은데 그런 주제에 이런 차림으로 나돌아 다니나. 보아하니 집 밖에 잠깐 나갔다가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안 그래도 작은 사람이 쭈그려 앉아 있는 게 안쓰러워 키세는 양 손을 쿠로코의 어깻죽지에 넣어 번쩍 일으켰다.
여러 번 본 사이니까 집에서 재우는 것쯤이야 괜찮겠지. 쿠로코가 당혹스러운 듯 눈을 마주치자 키세는 생긋 웃음으로 답했다. 키세의 집 앞에서 죽치고 있던 팬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꽂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쿠로코는 애써 그 시선들을 회피했다. 얼굴이 꼭 따가운 것 같다.
“일단 우리 집에라도 들어가 있는 게 낫겠어요. 감기 걸리면 어떡함까.”
“저어…하지만….”
그가 난처한 듯 팬들을 슬쩍 바라보는 것을 보곤 키세는 상관없다며 쿠로코의 어깨를 감싸 안아 자신의 집 앞으로 향했다. 정말 괜찮은 건가… 문 앞에 다다라 팬들에게 이제 집에 들어가라며 웃어보이자 요지부동으로 가만히 있던 그녀들이 비소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쿠로코는 괜스레 뻘쭘해져서 애꿎은 카디건 끝만 만지작거렸다. 올 풀린 실이 손 끝에 거슬렸다.
조심해서 들어가요. 키세가 손까지 흔들어주는 모습에 팬들은 볼을 붉히며 홀연히 복도를 벗어난다. 확실히 늦은 시간이라 평소보단 몇 명밖에 없긴 했지만, 그래도 옆집 주변이 이렇게 휑한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이제 됐다는 듯 쿠로코를 한번 보던 키세가 전자키를 갖다 대자 문이 열린다. 몇 시간 만에 따뜻한 실내로 들어오니 이제야 좀 살 것 같아 몸의 긴장이 스륵 풀렸다.
“키세 군은 번호 키는 안 쓰나 봐요?”
뭐 본인이야 번호 키보다 열쇠가 편하니까 열쇠를 고집하는 거지만, 그래도 요즘은 다들 번호 키를 쓰지 않던가. 쿠로코의 물음에 키세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답하기 곤란한가. 혹 자신이 말실수를 했나 싶어져 쿠로코는 입술을 잘근거렸다.
“전에 번호키 쓸 때, 짖궂은 팬들이 비밀번호를 알아내서 집 안에 들어와있던 적이 있었슴다. 놀랐기도 놀랐고 딱히 좋은 기억이 아니라서 그 뒤론 안 써요.”
아…그런 일이 있었구나. 이야기를 들은 쿠로코가 미안한 듯 나직이 사과했다. 그러자 주방에서 커피를 찾던 키세가 무슨 소리냐는 듯 손을 절레절레 저었다.
“뭐, 가끔은 난처하기도 하지만 괜찮슴다. 어쨌거나 절 좋아해준다는 거잖아요?”
네에… 실내를 둘러보던 쿠로코는 거실 소파에 앉아 쿠션을 품에 꼭 안았다. 자신이 그 상황에 놓였다면 분명 단호하게 굴었을 텐데, 분명 다정다감한 키세는 험한 말도 못한 채 내보냈을 테다. 좋아하는 사람에겐 무슨 짓이건 하는 악성 팬들이 얄궂다.
티비를 킬까, 하다가 분명 같은 집구존데 꼭 다르게 느껴지는 집 내부를 한번 살펴본다. 집, 구경해도 됩니까? 자신의 물음에 키세가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쿠로코는 소파에서 일어섰다.
“집이 참… 휑하네요.”
정말이지 휑하단 말이 딱 어울린다. 꼭 필요한 가구만 덜렁 놓인 거실과 안방. 그나마 꽉 차있을 곳 하면 옷 방 뿐이려나. 무심결에 문을 열었다가 눈앞에 보이는 옷들에 쿠로코가 당황한 듯 몸을 뒤로 뺐다. 와, 옷 진짜 많다….
“옷이 무척… 많네요.”
“아? 아. 직업이 직업이니까요. 옷 사는 것도 좋아하고 입는 것도 좋아함다.”
그래 보이긴 했다. 마주칠 때마다 다른 옷차림이었던 키세의 평소 모습을 한번 생각해보다가 쿠로코는 방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그래도 집안 꾸미는 일 같은 건 좋아할 줄 알았더니…. 예상외네.
“집이 허전하다고 생각했죠?”
“네? 어, 음….”
“굳이 안 둘러대도 됨다. 아시다시피 이사 온지 얼마 안됐잖아요? 요즘 일이 바빠져서 제대로 꾸미지도 못하고 전 집에서 가구랑 옷만 들고 온 거예요.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지는 다 구상 해놨는데, 막상 할 시간이 없어서 문제.”
나중에 시간 나실 때 말하시면 도와드릴게요. 집이 넓어서 혼자 꾸미긴 힘드실 테니까…. 도록도록 눈동자를 굴려가며 쿠로코가 조심스레 말했다. 그러자 제 말에 해사하게 웃어 보이는 키세의 모습에 안심한 듯 힘이 잔뜩 들어가 있던 어깨가 내려간다. 그래주면 저야 감사함다. 방방거리며 기뻐하는 모습이 꼭 강아지 같기도 하고….
나중에 꾸밀 때 불러주세요. 쿠로코의 말에 알겠다며 들떠하던 키세가 무언가 걸리는 구석이 있는 듯 우물쭈물 거린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잔을 들어 올리다 말고 키세를 주시한다. 할 말이 있나.
“저….”
“말씀하세요, 키세 군.”
“꾸밀 때 말고, 그냥 보고 싶을 때도 연락해도 됨까?”
아,
“…안돼요?”
“…돼요.”
한 방 당했다.
비가 온다.
겨울이 지나고서 처음 내린 비다. 나는 검은 양복을 챙겨 입으며 그 풍경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얼마 만에 일 없는 날인지 모르겠다. 매니저 형에게 오늘 스케줄을 비워달라고 부탁해두었다. 그가 별말 없이 그러겠다고 해줬음에 새삼 감사해진다. 하기야 그도 그럴 것이, 5년째 이래왔으니까.
오늘은 너를 보러가는 날이다.
“비가 꽤 많이 오네요….”
몸에 헐렁하게 남는 양복이 거슬려 불쾌하던 느낌조차 무덤덤해진다. 살이 더 빠진 건가. 체중관리를 하려고 아득바득 식이조절을 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밥 좀 챙겨먹으라는 소리를 듣고 다니자니 기분이 참 묘하다.
잡다한 생각을 그만두고 다시금 창문에 시선을 둔다. 세상이 점차 젖어드는 모습이 경이롭다. 하늘이 꼭 서럽기라도 한 듯 비를 토해낸다. 빗방울이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듣기 좋다. 나는 나가는 것도 깜빡하고선 한참을 창문 앞에서 보낸 것 같았다. 분명 너랑 비를 같이 맞았던 것 같은데. 머릿속에 불현듯 우산을 쓰고서 나란히 너와 걷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그래, 그랬던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어라.”
근데 그게 언제더라? 나는 턱을 괴고선 한참이나 고민했다. 기억이 너무나도 흐릿해서 나조차 당황스러웠다. 너와 같이 비를 맞았던 때가 언제더라, 네가 그때 무슨 옷을 입었더라…. 너는 그때 내게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입술을 잘근거리며 머리를 굴려본다. 조각난 기억들의 파편을 찾으려 애를 쓴다. 아니, 같이 비를 맞기는 했던가. 우산을 쓰긴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비는 맞는지, 아니면 눈인지, 애초에 우리가 날씨 흐린 날 만나기는 했는지... 어느 하나도 선명한 기억이 없다. 점차 흐릿해지는 시야만큼 너에 대한 기억도 흐리다.
“…쿠로콧치.”
참으로 입 밖으로 오랜만에 꺼내보는 이름이다. 쿠로콧치, 쿠로콧치, 쿠로코... 계속 입 밖으로 뱉어본다. 음절을 발음하며 굴려지는 혀의 움직임마저 낯설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홀로 먼 곳으로 보낼 때만 해도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때가 있었다. 너에 관련된 어느 기억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고 했었다. 그랬다. 하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그리워 하염없이 작아진다. 마음속에 오롯이 들어찬 얼굴이 제게 웃어 보이면, 그 희미한 웃음이 예뻐서 속이 쓰렸다. 한번만 다시 보고 싶다. 같은 공간 속에서 마음을 나누던 그때가 얼마나 그리운지 모르겠다. 기어고 멀건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흐른다. 흐르고 흘러 닿을 수 없는 사람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네가 죽었다는 사실만 빼놓고서 모든 것을 망각해간다.
네가 죽은 지 5년이 꼭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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